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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Life

경상도 단석산의역사

by lineman 2024.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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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석산(斷石山) 정상 부근에는 높이 약 10m가량의 거대한 바위가 있다. 이 바위 밑에서는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을 위해 기도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지금도 산 아래 사찰인 신선사(神仙寺)에는 제단 모양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이곳 주변에는 화랑들이 수련하면서 무술을 닦았다는 ‘화랑바위’라는 곳도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역사적 배경과 자연환경 등을 고려하여 2005년 11월 7일 사적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경주 단석산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나요?

신라시대 때 신라인들이 신성시하던 명산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신라 시대 왕릉급 무덤 수십 기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옛 기록들을 살펴보면 “옛날 서라벌 사람들이 이산에 돌을 던져 기왓장처럼 포개지면 나라에 큰 변이 일어날 징조라고 믿었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많은 등산객들이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관광지보다는 유적지로 인식되고 있다.

 

왜 하필이면 단석산인가요?

삼국유사에 따르면 527년(법흥왕 14) 이차돈 순교 후 불교가 공인되면서 흥륜사·영묘사·황룡사·분황사 등 절터가 많이 생겨났다. 특히 황룡사는 진흥왕 12년(551)에 창건되었는데, 당시 승려 수만 해도 1만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645년(선덕여왕 14) 당나라 사신이 와서 장육존상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하자 이를 거절하였다. 그러자 당나라는 백제의 장인 아비지를 시켜 불상을 만들게 하였는데, 불상의 제작이 거의 끝나갈 무렵 갑자기 하늘에서 벼락이 쳐서 작업이 중단되었다. 이때 아비지는 자신이 만든 불상이 완성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목숨을 끊었는데, 그때 떨어진 칼이 박힌 자리가 바로 단석산이다. 이후 백성들은 부처님의 뜻이라 여겨 더욱더 정성을 다해 불상을 만들었고, 결국 이듬해 완공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그곳에 있던절이름이 선덕여왕때 지어진 영묘사인가요?

경주의 동쪽 토함산 서쪽으로는 선도산 남쪽으로는 남산 북쪽으로는 금강산 그리고 중앙부에는 금오산이 위치한다. 이중에서도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오악 가운데 남악이었던 팔공산맥 줄기 끝자락에 해당되는 지역이 바로 단석산이다. 원래 명칭은 밝돌산이었는데 조선 영조 때 간행된 『여지도서』에서부터 단석산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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