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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구파발동 사이에 위치한 이말산은 조선시대 때 내시들이 모여살던 곳이다. 내시는 왕에게 절대 복종해야 하는 존재였기에 궁궐 근처에 살았고, 자연스럽게 이곳에 내시묘역이 조성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소실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내시묘역은 10여 기 남짓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새로운 문화재 발굴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과연 어떤 유물이 발견되었을까?
내시란 누구인가요?
내시는 고려·조선 시대 궁중에서 임금을 가까이 모시던 남자 환관을 말한다. 거세 후 입궁하였기에 성생활이 불가능하였고, 주로 왕실 가족 및 궁녀들을 돌보는 일을 하였다. 또한 국가 기밀 업무를 맡거나 국왕의 비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특수한 신분 탓에 권력 남용 등 많은 폐단을 낳았으며, 결국 1456년(세조 2) 단종 복위 사건인 ‘사육신 사건’ 당시 상당수의 내시가 처형당하면서 점차 세력이 약화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 몇 명의 내시들이 있나요?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상으로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순왕조에 “왕비 우씨가 말하기를 (남편) 김부가 일찍이 여색을 좋아하더니 지금 임신 중이라 한다”라는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신라 말~고려 초 무렵 본격적으로 제도화되어 태종 6년(1406) 상선직이라는 명칭으로 법제화되었으며, 문종 1년(1451)부터는 종2품 관직으로서 정원 15명을 두었다. 특히 세종 8년(1426)에는 기존의 정5품 상선으로부터 품계를 한 단계 올려 당상관 직위로 승격시켰다. 다만 세조 12년(1466) 다시 원래의 종2품 상선으로 환원하였다.
왜 내시묘역이 많이 사라졌나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소실되고 말았다. 게다가 1960년대 후반까지도 내시묘역 주변 지역 주민들이 묘소 위에 무허가 건물을 짓고 살아왔기 때문에 더욱 훼손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1990년대 중반 대대적인 정비사업을 추진하면서 일부나마 복원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조사를 진행했으며, 2006년 11월 26일 사적 제198호로 지정되면서 체계적인 보존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새롭게 출토된 유물이 있다고 하는데 무슨 유물인가요?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 연구원팀이 지난 4월 27일**************** 산65-1번지 일대 도시개발지구 안에 있는 묘지 이장 과정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석물 9점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새로 발견된 석물은 무덤 앞에 세우는 문인석처럼 생긴 인물상 5점과 동물 모양 석상 4점이다. 이중 인물상은 키가 각각 165cm, 175cm이며 얼굴 생김새나 의복 형태가 비슷한 점으로 보아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해당 유적지는 통일신라 말기 또는 고려 초기 왕족이나 귀족층의 무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발견된 석물 덕분에 이제라도 역사 속 잊혀진 공간이었던 이말산 자락 아래 묻혀있던 내시묘역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었다. 비록 아직까지는 극히 일부만이 알려졌지만, 향후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통해 숨겨진 다양한 역사유산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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