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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Life

서울 망우산의역사

by lineman 2024.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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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중랑구 망우본동에 위치한 망우산은 조선시대 선조임금의 아들인 의안대군(懿安大君)과 부인 전주 이씨의 무덤이 조성되면서 왕실묘역으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5기의 묘소와 1기의 신도비 그리고 2기의 비석이 남아있다.

 

망우산이란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나요?

망우산이라는 이름은 태조 이성계의 4번째 아들이자 세종대왕의 형이었던 의안대군 이방석의 묘가 자리잡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왕실가족의 산’이라 하여 왕산(王山) 또는 용마산(龍馬山)이라 불렸는데, 1933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지명이 한자식으로 고쳐지면서 망우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조선시대 왕족들이 많이 묻혔다고 하는데 왜 그런건가요?

원래 처음엔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동구릉 경내에 있던 능이었으나, 1457년 세조 때 왕자의 난으로 왕위에 오른 예종이 일찍 죽자 계비 안순왕후 한씨가 자신의 친정아버지 함길도 관찰사 한명회의 딸로서 세자빈 책봉되었던 권전의 옛집터 근처에 묻어달라고 유언함에 따라 이장되었다. 이후 1630년경 숙종 임금이 명릉 서쪽 언덕에 장희빈의 묘를 쓰면서 다시 이장하게 되었다. 이때 다른 곳에 흩어져 있던 여러 후궁들의 묘들을 같이 옮겨오면서 자연스럽게 공동묘지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묻힌 건가요?

당시 유명인사나 고위관료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주로 묻혀 있었다. 대표적으로 독립운동가 오세창, 문일평, 방정환, 서동일, 서광조, 오재영, 유상규, 박인환, 조봉암, 김말봉, 이중섭, 이인성, 지석영, 최학송, 현준호, 김창숙, 여운형, 박열, 나혜석, 손병희, 한용운, 오기만, 신익희, 김상덕, 서윤복, 홍명희, 송진우, 조병옥, 장면, 박정희 등 약 200여명의 인물들이 안장되어 있다.

 

역사 속 위인들이 잠들어있는 망우산에서는 매년 추모제향행사가 열리고 있으며,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 현장이기도 하다. 또한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있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서도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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