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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Life

경상도 의흥전통시장의역사

by lineman 2024.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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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위치한 의흥전통시장은 조선시대때부터 이어져온 유서깊은 시장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부활했다고 하는데요,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전인 1720년경 ‘영남좌도’라는 이름으로 개설되었다고 합니다. 영남좌도는 대구광역시 달성군과 경북 경산시, 영천시, 청도군, 고령군, 성주군, 칠곡군 등 7개 시군을 아우르는 지역이었는데 현재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5개 시·군(대구광역시, 구미시, 김천시, 상주시, 문경시)만이 남아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좌도인가요?

조선시대 당시 각 도별로 명칭이 정해져있었는데, 이 중에서도 영남은 큰 규모였기 때문에 다른 지방과는 달리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경상도라도 안동권에서는 예안현감이라 부르고, 경주권에서는 건천현감이라 부르는 등 서로 다른 호칭을 사용했는데 이를 통칭해서 영남이라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권역 내에서의 주도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각각 좌도와 우도라고 불렀습니다. 즉, 영주지방 사람들을 좌도사람, 상주지방 사람들을 우도사람이라고 불렀던 것이죠.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있는 경상남도나 경상북도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랍니다.

 

왜 의성이었나요?

‘의성’이라는 지명은 신라시대 이전부터 존재하던 곳이지만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후 처음 등장하게 됩니다. 원래 이곳은 비옥한 평야 지대였으나 낙동강 상류로부터 흘러내려오는 퇴적물들이 쌓이면서 점차 농경지가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인근 마을 주민들이 하천변 제방을 쌓고 논농사를 지으면서 농업생산량이 크게 증가했고, 특히 쌀 생산량이 전국 최고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풍부한 농산물 덕분에 자연스럽게 인구가 유입되었고, 18세기 후반부터는 본격적으로 도시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기존의 촌락 형태로는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새로운 주거지를 조성해야 했는데, 이때 새로 만들어진 마을이 바로 위리동마을입니다. 또한 주변 산자락 아래 자리잡은 취락지였던 사촌리는 임진왜란 직후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되었는데, 나중에 도로가 확장되면서 교통 요지로 발전하였습니다.

 

어떻게 변했나요?

위리동마을은 초기에는 기와집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초가집이 늘어나게 되었고, 후에 일본식 가옥도 생겨났습니다. 한편 사촌리는 초가와 기와집이 뒤섞여 있었으며, 일부 주택은 서양식 건물 구조를 띠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재함으로써 전통문화와 근대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는데, 이것이 1970년대 새마을운동 시기에 이르러 현대식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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