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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 심학산은 해발 194m의 산으로 정상에서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모습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심학산이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이곳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버려진 땅이었다. 그러던 중 18세기 후반 실학자 성호 이익 선생이 “앞으로는 한강물이 흐르고 뒤로는 높은 산이 둘러쳐져 있으니 배 모양 같다”며 ‘배곶’이라 부른데서 유래했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홍수 방지용 둑을 쌓으면서 지금의 이름인 심학산(尋鶴山)으로 불리게 됐다.

조선시대때 왜 버려졌을까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첫번째로는 교통수단의 발달이다. 당시엔 한양-파주 간 도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접근성이 좋지 않았다. 두번째로는 땔감 부족 문제다. 임진왜란 후 산림 황폐화로 나무가 귀해지면서 민둥산이 늘어나 땔감 확보가 어려워졌다. 세번째로는 군사 요충지라는 점이다. 특히 6·25전쟁 직후 북한군 패잔병들이 숨어들어 게릴라전을 펼칠 만큼 전략적 가치가 높았다. 이러한 이유로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면서 자연스럽게 방치됐다.

왜 하필이면 심학산인가요?
그 이유는 지리적 특성 덕분이다. 서울 인근 지역 가운데 평야가 많고 강줄기가 굽이치는 곳은 흔치 않다. 하지만 심학산은 주변에 큰 산이 없어 사방이 트여 있고 물길이 흘러 천혜의 지형 조건을 갖췄다. 게다가 자유로변에 위치해 김포대교나 행주대교 등을 이용하면 쉽게 오갈 수 있었다. 또한 근처에 출판단지와 헤이리 예술마을 같은 문화시설이 들어서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됐다.

그럼 현재는 어떤가요?
현재 심학산은 둘레길 조성사업을 통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총 길이 6.8km의 둘레길은 경사가 완만해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등산로 입구 주차장 부근에는 약천사란 사찰이 자리 잡고 있으며 절 뒤편으론 커다란 불상이 세워져 있다. 최근에는 둘레길이 알려지면서 평일 500명, 주말 2000명의 방문객이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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