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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Life

서울 구룡산의역사

by lineman 2024.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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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도곡동 사이에 위치한 구룡산은 조선시대 때 부터 있던 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전인 1413년 태종 13년때 이 곳에 아홉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하여 구룡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해요.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정기를 끊기 위해 구룡산 정상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구룡산에서는 용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데요,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개포동 주민센터 근처에 가면 용모양 조형물이 있던데 무슨 의미인가요?

용 모양 조형물은 원래 개포로라는 도로 위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차량 통행량이 증가하면서 안전상의 문제로 철거되었고, 이후 양재천변 산책로에 재설치되었습니다. 최근엔 이곳에서도 이전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있는데요, 아마 조만간 새로운 자리를 찾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왜 구룡산에 쇠말뚝을 박았나요?

일본 사람들은 한반도의 정기를 끊으려고 전국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는데요, 특히나 남산 주변으로는 많은 수의 말뚝이 박혀있습니다. 이러한 영향인지 아직까지도 남산주변에선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1936년 9월 1일 오후 4시경 경북 경주시 남남서쪽 11km 지점에서 규모 5.8의 강진이 발생했는데, 이때 경주 시내 건물 대부분이 무너지고 불국사 다보탑 난간석이 떨어져나가는 등 피해가 엄청났습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남산의 정기가 끊어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구룡산에는 용이 살았을까요?

현재 구룡산 일대(강남구 개포동)에는 고려 시대 사찰인 봉은사가 있었고,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인근 지역주민들이 많이 찾았던 명산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옛날 문헌들을 살펴보면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는 한 마리밖에 살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나머지 여덟 마리는 어디로 갔을까요?

 

역사 속에서만 존재하던 구룡산이지만, 여전히 동네 뒷산처럼 친근한 모습으로 여러분 곁에 있답니다. 이번 주말 가족들과 함께 구룡산 등산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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