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라이프-Life

경기도 해룡산의역사

by lineman 2024. 3. 10.
728x90
반응형

 

동두천시 중앙로에 위치한 해룡산은 조선시대 때 왕들이 자주 찾았던 명산입니다. 산 정상부에 오르면 드넓은 평야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한눈에 담을 수 있고, 산세가 험하지 않아 가족단위 등산객에게도 인기가 많은 곳이죠. 하지만 이 좋은 환경과 더불어 아픈 역사 또한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지금부터 해룡산의 숨겨진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해룡산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유래되었나요?

해룡산(海龍山)이란 이름은 ‘바다’라는 뜻의 ‘해(海)’자와 ‘용’이라는 뜻의 ‘룡(龍)’자가 합쳐진 말로, 바다 용처럼 생긴 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 옛적 한 어부가 그물을 던졌는데 거기에 큰 물고기가 걸려올라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부에게 물어보니 “용이 하늘로 승천하기 위해 잠시 쉬고 있다”고 대답했다고 하는데요. 이후 사람들은 용이 쉬었다 가는 산이라 하여 이곳을 ‘해룡산’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왕들이 왜 해룡산을 좋아했나요?

실제로 세종대왕릉인 영릉에서는 매년 제사를 지냈는데, 이때 제물로 쓸 소를 잡기 위해서 인근 지역 주민들을 동원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교통수단으로는 먼 거리를 이동하는데 한계가 있었고, 결국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신하들은 임금께 건의하게 됩니다. 그러자 세종대왕은 직접 포천에서부터 의정부·양주·동두천 일대를 돌아본 후 현재의 해룡산 자락에 자리 잡은 보광사 앞 연못에서 물을 길어다 쓰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절을 지어 주지스님에게는 논밭을 하사했고, 스님은 다시 사찰을 짓고 불상을 모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왕실 제례 행사 시 반드시 이용되는 우물이 남아있다고 하네요.

 

일제강점기때 일본인들의 만행은 없었나요?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은 한국 내 항일운동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수많은 양민들을 학살했는데요. 특히 1938년 7월 1일부터는 전국 각지에서 대대적인 토지조사사업을 진행하면서 농민들의 땅을 빼앗았습니다. 이렇게 빼앗긴 땅 중 일부는 강제 징용 노동자들의 숙소나 탄약고로 쓰이기도 했는데요. 해방 직후 미군정청 자료에 따르면 약 4만여 명의 조선인들이 군부대 주둔지 건설 등 각종 공사에 투입되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1945년 8월 15일 광복 소식을 듣고 만세를 부르던 시민 수십 명을 총살하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민족정기를 되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1946년 5월 31일 2천여 명의 청년들이 모여 호국영령 추모제를 개최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1949년 10월 28일 국가보훈처로부터 현충시설로 지정되었으며, 1996년 6월 23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으로부터 발굴 작업을 실시하였으나 아직까지 유골조차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잊지 말아야 할 가슴 아픈 역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잊혀져가고 있죠.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 모두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이상으로 해룡산의 숨겨진 역사였습니다.

 

728x90
반응형

'라이프-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기도 오두산의역사  (0) 2024.03.10
경기도 장릉산의역사  (0) 2024.03.10
경기도 파평산의역사  (0) 2024.03.10
경기도 수리산의역사  (0) 2024.03.10
경기도 무봉산의역사  (0) 2024.03.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