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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Life

“정신장애 딸 치료하며 부실한 장애복지 절감했죠”

by lineman 2024.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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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김현아 한림대성심병원 교수

김현아 한림대성심병원 교수는 “성인 정신질환자가 심각한 병세를 겪는 동안만이라도 치료비와 생활비, 주거비 등의 국가 부조를 통해 환자의 자조를 책임져주는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아리 객원기자

 

20대 초반이었던 딸이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조울증)를 진단받았다. 그때부터 7년간 숱한 자해와 자살 시도로 정신병원 보호병동에 16차례나 입원했다. 딸은 상태가 호전되어 퇴원을 할 때마다 알바를 구해서 일했다. 자립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딸은 거창하진 않아도 스스로 돈을 벌어서 자신을 책임지는 삶을 바랐다. 하지만 병이 악화돼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부모에게 생활비를 받아야 했고, 그때마다 아이의 자존감은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 장애인 등록을 신청했다. 병세가 나아질 때까지만이라도 국가로부터 공식 부조를 받아 최소한의 경제적 자립을 이루는 게 성인으로서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방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차례나 거절당했다. 수많은 진료, 입원기록과 전문의들의 소견들은 깡그리 묵살되었다. 딸은 울면서 말했다. “내 병은 꾀병이라는 거야? 그럼 이런 혜택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거야?” 그것이 김현아 한림대학교성심병원(류마티스내과) 교수가 책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창비)를 낸 배경이다.

 

김 교수가 최근 펴낸 책 표지.

 

지난달 26일 경기도 안양시 한림대학교성심병원에서 만난 김 교수는 “원래는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라 글로 썼을 뿐 출간할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정신질환을 둘러싼 편견과 제도적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가족들의 동의하에 책을 펴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7년 전 딸의 팔에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칼자국을 발견했을 때 처음으로 알게 됐다. 아이가 오랫동안 우울을 앓으며 약을 먹어왔으며 자살시도도 한 적이 있다는 걸. 뉴스에서 우울증, 자해, 자살 등을 접할 때면 ‘우리 집처럼 밝은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그런 일을 겪을 리 없다’며 그저 남의 일인 줄 알고 살아왔기에 충격이 더욱 컸다. 학창시절 물리영재였던 딸은 공부도 잘하고 워낙 밝아서 모두에게 사랑받던 아이였다.

 

당연히 “도대체 왜?”라는 질문이 튀어나왔다. 아이는 답했다. “왜 힘든지 묻지는 마. 우리 집 같은 환경에서 뭐가 우울하냐고 할 거잖아. 아무도 날 이해해주지 못해. 그냥 힘들다고 하면 이해가 안 되는 거잖아.”

 

이런 상황에서 누구나 유전이나 환경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게 된다. 아이의 친가나 외가에도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아이에게 성적 압박도 주지 않았고 그저 잘 먹고 잘 자는 걸 강조하며 키웠을 뿐이었다. 그러니 김 교수는 혹시 자신과 남편이 살아온 길이 혹시나 아이에게 부담을 줬을까 하는 의심을 하기도 했다. 학력고사 전국 수석, 서울 의대 최우등 졸업의 이력을 가진 김현아 교수는 대한의학회 분쉬의학상, 일본류마티스학회 젊은의학자상 등 다수의 국내외 학술상을 수상한 유명 의학자다. 남편 정천기 신경외과 전문의는 뇌 연구로 이름이 높은 서울대병원 교수다.

 

많은 정신질환 가족들이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누군가를 탓하게 되고, 병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는 재빨리 병을 받아들이고 치료에 집중했다. “의학 교과서에 나오는 수많은 병 가운데 이해할 수 있는 원인이 규명된 병은 병원균이 밝혀진 감염병 말고는 몇가지 없다”는 걸 아는 의학자여서 가능했다. 그리고 해외서적과 논문 등을 섭렵해가며 병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책은 그 결과물이다. 이 병을 앓았던 역사적 인물들과 환자가 느끼는 고통의 실체, 치료의 예후와 한계, 급진적인 해외 치료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생생하게 다루고 있다.

 

조울증 딸 돌보며 살아온 이야기

 

‘딸이 조용히 무너져…’ 책에 담아

 

집필 위해 해외 서적과 논문 섭렵

 

“병과 환자 이해하려는 노력 중요”

 

“성인 정신질환자 병세 심각하면

 

국가가 치료비와 생활비 지원을”

 

학술상 다수 류마티스내과 전문의

 

서구에서 양극성 장애 유병률은 1∼2%이고,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질환 순위 중 양극성 장애는 28번째다(2019년 세계질병부담 기준). 이렇듯 드문 병이 아니지만, 아직 확실한 치료법이나 약물 개발은 더딘 상황이다.

 

아이는 나아지는 듯하면서도 악화되었다. 계속되는 자해와 자살충동에 공황발작까지 나타나면서 부모가 수시로 응급실 호출을 받아야 했다. 완치의 희망은 고사하고 그저 오늘 하루만 아이의 죽음을 임시변통으로 막는 듯한 날들이 이어졌다. 담당의는 “최악의 사태가 생겨도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바다를 부서지는 배를 타고 헤매는 심경”이었다.

 

하지만, 딸의 투병 과정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우리 사회의 부실한 장애복지 시스템도 돌아보는 과정이 되었다. 그는 “아이의 병이 아니었더라면 장애인 차별 문제에 대해서도 피상적인 문제의식밖에 가지지 못했을 것”이라며 “아이의 병은 부모에게 인생을 새롭게 가르쳤고 부모는 얼마간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또 “정신질환은 대체로 장애로 인정해주지 않고 심각한 중증 정신질환의 10% 정도만 장애로 인정해주고 있다”며 “성인 정신질환자가 심각한 병세를 겪는 동안만이라도 치료비와 생활비, 주거비 등의 국가 부조를 통해 환자의 자조를 책임져주는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인 정신질환자가 병으로 인해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해 살아가는 경우 자괴감으로 병세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환자 가족 역시 과중한 치료비 부담으로 붕괴되기가 쉽다.

 

특히 최근의 신경다양성 이론은 정신장애를 비정상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양한 신경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정신질환자들이 남들이 하지 않는 사고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기여를 함으로써 인류 종을 지켜왔다고 분석한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낙인 대신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그는 “부부 모두 의사로 일하는 우리도 이렇게 힘든데, 우리처럼 전문 지식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견뎌낼까?” 하는 마음에 자신이 먼저 알게 된 것들을 나누고자 책을 펴냈다. 그는 정신질환 가족들에게 “만성질환이기에 마라톤이라고 생각하며 임할 것”을 강조하며 몇가지를 당부한다. 과도한 연민 대신 병과 환자에 대해 이해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 부모의 마음을 먼저 다스릴 것, 재정적·경제적 고려를 확실히 할 것, 내가 해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환자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의 한계선, 내가 환자의 삶에 개입해서는 안 되는 경계선 등을 세우고 지킬 것 등이다.

 

그는 3년 전 ‘죽음을 배우는 시간’(창비)을 펴내면서 “우리가 죽음을 준비하지 않으면 죽음보다 더 나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일깨워 준 바 있다. 그는 이번 책을 통해 우리가 생에서 전혀 예기치 않은 고통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준다. 그것은 고통을 직시하고 최선을 다해 해결에 전념하되 다른 고통받는 이들과의 연대를 지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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